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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

[10월] 포모의 소장자료 소개 '한반도 구석구석 전파되는 내선일체'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 2024-09-27 568

한반도 구석구석 전파되는 내선일체(內鮮一體)

- 국민총력조선연맹과 애국반 -




총력운동총서(總力運動叢書)[구입2~8]

1941~1942년 국민총력조선연맹에서 발행한 총서. 총력운동총서는 국민총력조선연맹이 조선인의 황국신민화 운동과 전쟁정책에 대한 협력을 강요하고, 내선일체와 근로 보국에 집중하여 선전하는 역할을 한 간행물로서,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의 단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7대 조선총독 미나미 지로(南次郎, 남차랑)시국과 내선일체’(16), 조선총독부 법무국 민사과장 미야모토 하지메(宮本元, 궁본원)시국과 준법정신’(21) 등이 대표적이다.

총후봉공(銃後奉公)을 위한 국민총력조선연맹

국민총력조선연맹 (國民總力朝鮮聯盟)194010월 조선총독부가 조직한 친일단체로, 전쟁 시국에 대한 협력과 조선 민중에 대한 강력한 통제, 후방 활동의 여러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조직된 기구이다.

이 연맹은 19386월 중순에 민간 사회교화단체 대표자들이 총독부의 종용에 따라 자발적인 총후봉사활동을 내세우며 조직한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의 후신이라고 할 수 있다. 국민총력조선연맹은 동아신질서 건설 방침을 구체화한 신체제운동과 관련하여 전시국민훈련 및 국민 동원의 모든 부문에서 활동하였으며, 그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기관지 국민총력의 발간, 라디오 프로 국민총력의 시간운영, 출판물 총력총서(總力叢書)발간과 강연회 · 좌담회를 통한 황민사상 및 황민생활 고취, 총력연맹 문화부를 통한 황민적 문화 동원, 각 직장 총력연맹을 통한 황민운동과 황민 동원, 지역, 직역(職域) 연맹과 애국반을 통한 공출, 물자 절약, 징병 · 징용 독려, 신궁참배단 · 병영견학단 · 황군위문단 파견과 대전과(大戰果) 감사 국민총진격대회 등의 개최를 통한 전쟁의식 고취 등이다.

조직 구성은 조선의 모든 단체와 개인이 지역 및 직장별로 국민총력조선연맹 산하에 조직되는 형태로, 지도조직과 중앙조직, 지방조직으로 나뉜다. 지도조직은 조선총독부 내에 국민총력운동지도위원회라는 이름으로 설치되어, 정무총감이 위원장을 맡고 총력운동의 기본방침을 정했다. 중앙조직에는 조선의 모든 단체와 개인이 구성원으로 편입되며, 조선총독이 총재가 되었다. 지방조직은 각종 도, , , 면 등 지방행정 단위와 말단의 애국반을 포함한다.

이 연맹은 194578일 본토 결전에 대비한 조선국민의용대가 조직됨으로써 같은 달 10일 여기에 통합 · 흡수되면서 해체되었다.




애국반[구입757]

1943[昭和18]81일 국민총력조선연맹(國民總力朝鮮聯盟)에서 발행한 애국반愛國班 32호 전단지

조선 말단에서부터 조직된 애국반

애국반은 인적, 조직적으로 동원 가능한 자원이 빈약했던 조선에서 총독부가 주축이 되어 만든 최하부 말단 조직이다. 총독부는 애국반 단위를 통해 주민들에게 후방에서의 마음가짐과 임무에 대해 선전하면서 노동력과 자원 등을 체계적으로 동원하려 하였다.

그동안 매스컴은 물론 공식교육이나 각종 단체 활동의 영향력 밖에 있었던 대부분의 조선인, 특히 가계를 이끌어 가는 주부를 비롯한 일반 주민들이 설득과 동원의 대상으로 떠오른 것이다.

일본의 국민정신총동원 운동이 시정촌 단위의 조직 없이 출발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조선에서는 말단행정 단위를 기본으로 주민조직을 결성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말단에 이르는 조직망이 조선에서 먼저 이루어진 이유는 대륙침략 정책의 수행에서 병참기지의 역할을 담당해야 할 조선에서 적극적인 협력을 이끌어 내야 할 필요성이 절실해졌기 때문이다.

1940년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연맹을 국민총력연맹으로 개칭한 후 조선인의 황국신민 철저화 및 국민총훈련과 생산력 확충 등을 최대 강령으로 하면서 애국반 조직을 확대하였다. 기존과 마찬가지로 1030명 단위를 표준으로 조직을 확대하여 194012월에는 전국적으로 약 38만여 개에 달하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참고자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