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동원

국민통합과 평화, 인권신장에 기여

군인동원

개요

육군특별지원병령을 기점으로 직접적인 전투 수행을 목적으로 동원한 인력

군인동원은 「육군특별지원병령」(1938년 2월 22일, 勅令 제95호)을 기점으로 직접적인 전투수행을 목적으로 동원한 인력이다. 강제동원된 병력은 지원병과 징병으로 구분된다. 지원병은 본 용어의 의미와 달리, 개인의 자유의사와 일정한 거리가 있었다. 지원병의 자격은 보통학교 졸업(이와 동등 자격자) 이상 학력을 소지한 자로서 17세 이상인 조선인 남자로 공표하였으며, 일제는 경찰력을 동원해 선전과 회유, 종용 활동에 적극 앞장섰다. 또한 전문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병력을 동원한 ‘학도지원병제도’에 일부는 자살특공대(가미카제, 신요, 마루레, 가이텐 등)로 동원되는 비극을 겪었다.

1943년 11월 21일 학도지원병이 마감되기까지 지원을 하지 않는 학도지원병 기피자에게는 징용장이 발부되었고, 기피자는 징용학도 또는 응징학도라 불렀다. 1944년 일본 제국회의 자료에 언급된 기피자 규모는 125명이었으나 위원회에서는 400명 이상으로 추산하고 있다.

징병은 국가의 구성원에게 국가를 방위할 병역 의무를 강제하는 제도이다. 전쟁 초기만 하더라도 일제는 조선인을 징병 제도에 포함시키지 않으려 했으나, 급박한 전세로 인해 조선인까지 징병제 대상이 되었다. 1944년 4월 1일부터 8월 20일까지 제1차 징병 검사가 실시되었고, 동년 9월 1일부터 제1기 징병 대상자가 입대하기 시작했다.

일본정부의 공식 통계 가운데 최저치를 적용하면 군인 동원의 총수는 209,279명이다.

군인동원 규모
(단위: 명)
군인동원 규모: 구분, 계에 대한 표
구분
육군특별지원병 16,830 209,279
학도지원병 3,893
육군징병 166,257
해군(지원병 포함) 22,299

출처: 『위원회 활동 결과보고서』, 대일항쟁기강제동원피해조사및국외강제동원희생자등지원위원회 편, 2016, 124쪽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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